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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묵상]선한 능력으로 | 내일을 몰라도 두렵지 않은 이유 하루를 마치고 조용히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우리에게는 ‘선한 능력으로’라는 제목으로 익숙한 찬양을 들었습니다.잔잔하고 평안한 곡이지만, 이 찬양이 만들어진 배경을 생각하면 그 고백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이 찬양의 바탕이 된 글은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치 정권 아래 수감되어 있던 1944년 12월 19일, 약혼자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편지에 담긴 시입니다. 본회퍼는 자신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글을 남겼고, 이듬해인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었습니다.그 사실을 알고 다시 찬양을 들으니 마음에 한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나는 내일이 안전하다는 확신 때문에 평안한가,아니면 내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 2026. 9. 20.
[도서 묵상] 조창인 《가시고기》 - 사랑은 얼마나 자신을 내어줄 수 있을까 어릴 때는 부모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밥을 차려주는 것도,아플 때 밤을 새우는 것도,필요한 것을 어떻게든 마련해주는 것도그저 당연한 일처럼 느껴집니다.그러다 시간이 지나고,내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됩니다.당연했던 것들 뒤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조창인의 《가시고기》는 그런 이야기입니다.백혈병에 걸린 어린 아들 다움이.그리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거의 모두 내어놓는 아버지.아버지는 대단한 영웅도,부유한 사람도 아닙니다.아들의 고통을 대신할 수도 없고,병을 없애줄 수도 없습니다.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갈 뿐입니다.병원에 있고,돈을 마련하고,아이 곁을 지키고,아들이 아프면 차라리 자신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이야기가 마지.. 2026. 9. 20.
[도서 묵상] 이상 《날개》 - 나는 정말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어쩌면 삶을 멈춘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아침에 눈을 뜨고,밥을 먹고,하루를 보내고,다시 잠이 듭니다.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살아 있습니다.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고,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며,그저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그것을 정말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이상의 《날개》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었습니다.작품 속 ‘나’는 거의 방 안에서 살아갑니다.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세상과 적극적으로 관계하지 않으며,잠을 자거나 혼자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아내가 밖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면,‘나’는 그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사람입니다.무엇인가를 선택하기보다 주어진 대로 살아가고,무언가를 만들어가기보다 흘러가는 삶에 자신.. 2026. 9. 19.
[도서 묵상] 김승옥 《무진기행》 - 우리는 왜 안개 속으로 숨고 싶어질까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직장에서 맡은 역할도,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도,내가 애써 만들어온 삶도 잠시 내려놓고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주인공 윤희중은 서울에서 제법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처가의 도움을 받아 제약회사의 전무 자리를 앞두고 있고, 사회적으로 보면 이제 안정된 삶의 궤도에 올라선 사람입니다.그런 그가 잠시 고향 ‘무진’으로 내려갑니다.무진에는 특별한 명승지도,자랑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대신 그곳에는 지독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있습니다.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들고,거리와 경계를 지우며,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보이지 않게 만드는 안개.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무진.. 2026. 9. 16.
[도서 묵상]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가볍게 사는 것이 정말 자유일까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고,후회할 과거도 만들지 않으며,원하는 대로 사랑하고 떠날 수 있는 삶.우리는 때때로 그런 삶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무거운 책임도 없고,붙잡아야 할 관계도 없으며,잃을 것이 없다면 상처받을 일도 적을 것 같습니다.그런데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제목부터 묘한 역설을 던집니다.가벼운데, 왜 견딜 수 없는가.작품에는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츠가 등장합니다.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자유를 원하지만 그 자유 때문에 외로워하며,관계를 붙잡으면서도 그 관계의 무게에서 도망치고 싶어 합니다.그리고 그들의 개인적인 삶 뒤에는 ‘프라하의 봄’과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이라는 거대한 역사도 흐르고 있습니다.개인.. 2026. 9. 13.
[영화 추천] 기독교인의 시선으로 본 《매트릭스》 - 거짓된 세계에서 깨어나 진리를 선택한다는 것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The Matrix)》는 SF 영화의 역사를 바꾼 작품입니다.인간이 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세계가 사실은 기계가 만들어낸 거대한 가상현실이고, 진짜 인간들은 자신도 모른 채 시스템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은 당시에도 충격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현실인가?나는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 만들어놓은 질서 안에서 자유롭다고 믿고 있을 뿐인가?기독교인의 시선으로 《매트릭스》를 바라보면 이 질문은 조금 더 깊어집니다.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의심조차 하지 않는 세상의 가치와 욕망 속에서,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매트릭스》는 어쩌면 거짓된 세계에서 깨어나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 2026.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