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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정리하지 못한 밤 이상의 「이런 시」를 읽으며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하지만 끝내 해내지 못했다. 하루가 저무는데도 마치지 못한 일이 마음에 남는다. 애썼다는 말만으로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이런 마음으로 이상의 「이런 시」를 읽는다.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내게 오지 않을 사랑을 알면서도 상대의 안녕을 빌어 주는 말처럼 읽힌다. 저렇게 다정한 문장으로 마음을 닫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 하루에도 그런 끝맺음을 붙일 수 있을까.그런데 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앞에는 땅에서 나온 돌이 길가로 옮겨졌다가 사라지는 낯선 이야기가 있고, 뒤에는 어떤 돌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 화자는 방금 쓴 시를 찢어 버리고 싶다고 말한다.이런 시는 그.. 2026. 10. 25.
[찬양묵상]여호와의 유월절 | 죽어가는 예배가 다시 살아나는 자리 조용히 시와 그림의 ‘여호와의 유월절’을 들었습니다.익숙한 찬양인데, 오늘은 유난히 한 장면이 마음에 머물렀습니다.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신을 벗는 사람.하루 동안 짊어지고 있던 수많은 역할과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채 하나님 앞에 서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직장에서는 책임을 다해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하며, 여러 자리에서 제 몫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그러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조차 그 모습들을 그대로 신고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얼마나 옳은지,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는지를 마음 한편에 붙잡은 채 말입니다.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나는 정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배하고 있는가.아니면 예배하는 사람이라는 모습만 남아 있는 .. 2026. 10. 25.
[도서 묵상] 염상섭 《삼대》 - 부모의 삶은 자녀의 운명이 될까 우리는 부모에게 많은 것을 물려받습니다.얼굴을 닮고,말투를 닮고,성격을 닮습니다.살아가는 방식도 닮습니다.돈을 바라보는 태도,사람을 대하는 방법,화를 내는 방식,사랑을 표현하는 방식까지.어린 시절에는 몰랐는데 어느 순간 내 모습에서 부모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좋은 모습이면 웃을 수 있지만,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모습까지 내 안에서 발견될 때는 조금 두렵습니다.나는 결국 내가 보고 자란 대로 살아가게 되는 걸까.염상섭의 《삼대》는 바로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조씨 집안의 세 남자.할아버지 조의관,아버지 조상훈,그리고 손자 조덕기.세 사람은 같은 가족이지만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갑니다.조의관은 가문의 체면과 재산, 전통적인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그의 아들 상훈은 교육을 받고 새로운.. 2026. 10. 18.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를 읽으며 「쉽게 씌어진 시」를 읽으며토요일 아침, 윤동주의 시 한 편을 펼친다. 천천히 읽다가 한 대목에서 멈춘다.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1942년 일본 유학 중에 쓴 이 시에는 식민지 청년의 고독과 시대를 향한 고뇌가 담겨 있다. 그 부끄러움을 오늘 내 일상의 반성과 같은 무게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시를 읽는 동안 내가 쉽게 적어 온 말들이 떠오른다.나는 믿음에 관한 말을 곧잘 쓴다. 하나님을 신뢰하자고, 서로 사랑하자고, 모든 일에 감사하자고. 한 문장을 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문장을 살아 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작은 계획이 틀어져도 마음이 급해지고, 누군가의 무심한 말에는 오래 서운해한다. 사랑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 2026. 10. 17.
[묵상] 토요일 아침, 내 생각이 늘 맞을까? 토요일 아침, 평일 동안 서둘러 내렸던 판단들을 잠시 돌아본다. 사람에 대해, 지나간 일에 대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내일에 대해 나는 꽤 많은 결론을 내려 두고 살아간다. 그 결론에는 대개 “늘 그랬으니까”라는 익숙한 근거가 붙어 있다.답장이 늦다는 이유로 상대가 무심하다고 생각하거나, 전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이번에도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할 때가 있다. 아직 사정을 듣지 않았고, 다시 해 보지도 않았는데 마음속 판단은 이미 끝나 있다.토요일 아침의 여유를 빌려 내게 묻는다. 내가 확신하는 것들 가운데, 다시 살펴보아야 할 생각은 없을까.고정관념에 대한 나의 생각내게 고정관념은 내 경험만으로 사람과 상황을 충분히 안다고 여길 때 굳어지는 생각이다. 경험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몇 번의 경.. 2026. 10. 17.
[시 묵상]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 흔들림은 믿음이 피어나는 시간 시 본문 자리를 넣고, 묵상 위주로 줄였습니다.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시인은 아름다운 꽃도 모두 흔들리고 젖으며 피었다고 말합니다.이 짧은 시가 그리스도인에게 묻습니다.당신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느냐고.1.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라는 오해우리는 믿음이 좋으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흔들릴 때마다 자책하고, 그 모습을 감춥니다.하지만 흔들림은 실패의 표시가 아니라 피어나는.. 2026. 10. 12.